잉글랜드-스코틀랜드 300년 동거 삐거덕 /1* @@

스코틀랜드, 영국서 독립투표 강행 수순

(런던=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 영국에 속해 있으면서 상당부분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수장인 알렉스 새먼드 제1장관은 26일 독립에 대한 스코틀랜드인들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 문안을 공개하고 2014년 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앙 정부는 국민투표를 한다면 엄정한 선거관리가 이뤄지는 가운데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한지붕 네가족 = 영국은 주축인 잉글랜드를 비롯해 웨일스,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 4개 자치 정부 연합으로 구성돼 있다.

스코틀랜드는 1707년 잉글랜드와 통합되기 이전에 오랜 독립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603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세상을 떠난 뒤 후손이 없자 인척인 제임스 6세 스코틀랜드 왕이 잉글랜드 왕(제임스 1세)에 오르면서 통합 과정을 밟았다. 이후 1702년 제임스 2세의 차녀가 여왕으로 즉위하면서 스코틀랜드는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이라는 하나의 의회와 정부 아래 잉글랜드에 완전히 합쳐졌다. 그러나 형식만 통합됐을 뿐 스코틀랜드는 과거 앵글로 색슨족에 밀려 추운 북쪽으로 쫓겨났던 켈트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잉글랜드에 대한 민족적 반감이 뿌리깊이 남아있다. 실제 상당수 스코틀랜드인들은 잉글랜드와 유럽 국가 사이의 축구 경기에서 유럽 국가를 응원한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그동안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보수당 등 독립에 반대하는 정당들이 연합해 다수당을 이뤘으나 지난해 5월 실시된 선거에서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서 독립 투표가 탄력을 받고 있다.


◇ 독립투표 실시는 대세…세부 방안 이견 =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가 공개한 투표 문안은 `스코틀랜드가 독립 국가가 돼야한다는데 대해 동의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투표 실시 시기는 2014년이고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독립 지지도가 높은 16~17세 청소년들에게도 투표를 허용키로 했다. 투표일도 통상 영국의 선거일인 목요일이 아닌 토요일로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와 함께 중앙 정부로부터의 자치권 확대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두번째 질문을 추가하는 방안도 거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앙 정부는 국민투표 실시 자체를 굳이 막지는 않겠지만 공정한 선거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먼저 2014년은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치렀던 독립투쟁 가운데 대표적으로 승리했던 배넉번 전투가 있은지 700년이 되기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독립 분위기가 고조되는 때다. 투표 시기를 2014년에 맞추지 말고 조기에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코틀랜드가 독립해야 하는데 동의하느냐'는 문안은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스코틀랜드가 영국의 일부분으로 남아있는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으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투표 문안을 비롯해 투표 연령 하향 조정이나 투표 요일 변경 등 세부 사항을 선거관리위원회가 결정해야 한다고 중앙 정부는 강조했다.

중앙 정부는 유로존의 재정 위기로 인해 가뜩이나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소모적인 논쟁은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 자치권 확대 노림수 = 현재 여론 조사는 찬성이 35%, 반대가 55%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스코틀랜드국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지만 노동당, 자유민주당, 보수당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투표 결과가 찬성으로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또한 이미 300년간의 융화 정책으로 인해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잉글랜드인도 많고 정착한 이민자들도 만만치 않다. 현실적으로 스코틀랜드 정부의 예산은 영국 의회에서 교부하는 보조금이 90%를 차지하고 있다. 총리를 지낸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등 중앙에서 활동중인 스코틀랜드 출신 정치인들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중앙 정부는 그러나 독립 투표 문제로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 세울수록 찬성표가 결집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는 독립 투표에서 부결되더라도 찬성률이 높게 나오면 재정, 산업 등의 분야에 대한 자치권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헌법, 국방, 국가안보, 재정, 경제 정책, 외교, 사회보장 등을 제외한 분야에서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재정적인 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자치권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중앙 정부와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가 국민투표 문안에 `자치권 확대'를 채택할지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를 펴는 것도 이러한 `국민투표 부결 이후 자치권 확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 2012.01.26


조선인들의 바깥 세상 나들이 /1* @@ 한국사(서적)

'조선 사람의 세계여행'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해외여행이 완전 자유화된 것도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니 500년 전 조선시대에 해외여행이란 그야말로 극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도 말이 '여행'이지 타의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통신사의 일원으로 가거나 조공무역의 일환으로 '팔려' 가거나 길을 잃고 표류하다 본의 아니게 외국에 상륙하게 되는 경우 등이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엮은 '조선 사람의 세계여행'(글항아리 펴냄)은 고려말 조선초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600년간 이뤄진 조상들의 해외여행을 소개하는 책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여행기나 견문록, 지도와 기록화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와 목적의 여행 속에서 생전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접한 조선인들의 감상을 전한다.

조선시대 가장 널리 사용됐던 중국어 학습서 '노걸대'는 고려 상인이 길에서 만난 중국 상인과 함께 중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고 판 후 귀국길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106개의 상황으로 설정해 그에 맞는 대화를 소개하는 회화 교재다. 실제 14세기 중엽 중국을 여행한 고려인이 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할 정도로 상황 설정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정교해 생생한 중국 여행기로 읽기에도 손색이 없다.

숙박비나 물건값을 깎기 위해 옥신각신하는 대목, 중국인에게 전해듣는 노상강도 사건, 귀국날짜를 택일하기 위해 점쟁이를 찾아가는 장면 등 당시 중국의 사회상과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그런가하면 조선 성종 때의 관료 최부의 '표해록'은 흔치 않은 '자유여행'의 기록이다. 제주도에 출장을 갔던 최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육지로 오던 길에 풍랑을 만나 15일간 표류하다 중국 땅에 발을 내딛게 된다. 뜻하지 않게 자유여행의 기회를 얻게 된 최부는 반년 가까이 중국 강남에 머물며 그곳의 생활 모습을 기록하고, 중국 관리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강남 사람들은 글 읽기를 즐겨하여 비록 마을의 어린아이나 진부(津夫, 관에 속한 나룻배의 사공)와 수부(水夫, 뱃사람)일지라도 모두 문자를 알고 있었습니다. 신이 그 지방에 이르러 글자를 써서 물어보면 산천, 고적, 토지, 연혁에도 모두 환해서 상세히 알려주었습니다."(71쪽)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1896-1947)은 1927년 유럽과 미국 시찰을 가게 된 남편을 따라 여행길에 올라 '조선 최초로 구미 여행에 오른 여성'이라는 칭호도 얻게 됐다. 경성역에서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출발해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 등을 여행하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도 횡단한다. 이후 그가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여행기에는 보통 사람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후의 벅찬 감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구미 만유기 일 년 팔 개월 간의 나의 생활은 이러하얏다. 단발을 하고 양복을 입고 빵이나 차를 먹고 침대에서 자고 스켓치 빡스를 들고 연구소를 다니고 책상에서 불란서 말 단자(單字)를 외우고 때로난 사랑의 꿈도 뀌여 보고 장차 그림 대가가 될 공상도 해보앗다. (중략) 실상 조선 여성으로서는 누리지 못할 경제상으로나 기분상 아모 장애되난 일이 하나도 업섯다."(318쪽)

432쪽. 2만3천800원.

  
연합뉴스. 2011/07/07

농경전환 직후 인류 건강 되레 악화 /1* @@ 의학사

美 에모리대 연구진 "1만년전 장소.작물에 관계없이 같은 추세"

(서울=연합뉴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1만년 전 무렵엔 어디서 무슨 작물을 키웠든 사람들의 키가 작아지고 건강이 약화되는 똑같은 추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사이언스 데일리가 최신 연구를 인용 보도했다.

미국 에모리대학 연구진은 농경 전환기 인류의 키와 건강에 관한 전세계적인 기록을 분석한 최초의 연구 결과 이런 광범위하고 일관된 현상을 확인했다고 경제와 인류생물학 저널 최신호에 발표했다. 이들은 "농업과 현대 문명의 여명기에 인류가 더욱 안정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어 전보다 건강해졌을 것으로 흔히 추측하지만 초기 농경기 인류는 오히려 영양 결핍과 힘든 스트레스 적응기를 겪었다. 이들의 스트레스는 훨씬 다양한 식량 대신 특정 작물에만 의존해야 했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농경사회 정착으로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전염병도 늘어났는데 이는 위생 문제에 가축 등 신종 질병 매개체와의 인접성이 겹친 결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키가 점점 작아지던 추세도 마침내 바뀌어 인류 집단 대부분은 평균 신장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식량 생산의 산업화가 일어난 지난 75년간 이런 추세는 특히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문화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맹목적인 농업 신봉자들이다. 우리는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 항상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인류는 농업을 위해 비싼 생물학적 대가를 치렀으며 특히 영양의 다양성 면에서 그러했다. 지금도 인류가 섭취하는 열량의 60%는 옥수수와 쌀, 밀에서 나온다" 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중국과 동남아, 남북미, 유럽 등지의 인류 집단을 대상으로 개인이 아닌 집단 전체의 골격에 축적된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로는 성인의 키와 충치, 종기, 뼈 밀도, 치유된 골절상 등이 조사됐다. 수렵 채취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전환하면서 인류의 건강이 쇠퇴하고 영양 결핍에 의한 질병이 늘어났다는 연구는 지난 1984년 처음으로 발표돼 논란을 자아냈지만 오늘날 생물고고학 분야에서는 대체로 인정되고 있다.

연구진은 이 연구가 이런 가설을 더욱 강력히 뒷받침하는 것이긴 하지만 세계 어디서나 농업이 같은 방식으로 정착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북미 해안 지역은 작물은 해산물을 보충하는 정도로만 사용됐으며 이곳 주민의 생활은 농업 위주가 아니면서도 정착식이 돼 간 것이 키가 점점 작아지게 만든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사람의 몸이 1만년 전의 인위적 변화에 적응하는 방식을 보면 현재 인류의 몸이 어떻게 적응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2011/06/20


12월의 대장금이 만든 '청심환' /1* @@ 의학사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입니다. 조선 후기 세시풍속에 관한 기록은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한양세시기' '농가월령가' '동국여지승람'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옛날 사람들은 일년 중 11월과 12월에는 어떤 풍속으로 연말 세밑을 장식했을까요?

11월에는 24절기 중 하나인 동지(冬至)가 들어 있어 동짓달이라고 하여, 팥죽을 쑤어 문짝에 뿌리면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한다고 믿었습니다. 동짓날이 되면 궁궐의 내의원에서는 전약(煎藥 : 달인 약)을 임금께 만들어 진상하였는데 현대의 고약(膏藥)이 여기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한편 관상감(지금의 기상청과 유사)에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궐에 올리면 임금은 옥새를 찍어 신하들과 모든 관아에 나누어주었으며, 관원은 이를 고향의 친지 · 묘지기 · 농토 관리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 충남 합덕지에서는 매년 겨울이 되면 연못이 얼어붙어 용이 땅을 갈아 놓은 것 같은 이상한 변이 생겼는데 그 상태를 보아 다음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곤 하였습니다.

한편 12월 셋째 말일을 납일(臘日 : 섣달)로 정하여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지냈는데, 납향(臘享 : 섣달 제사)에 쓰는 고기는 경기도내 산간의 수령들이 잡아서 바친 산돼지나 산토끼였습니다.

내의원에서는 납약이라고 하는 각종 환약을 만들어 진상하였으며, 임금은 납약을 근시와 지밀나인들에게 하사하였습니다. 약은 청심환(淸心丸) · 안신환(安神丸) · 소합환(蘇合丸) 등으로 당시 매우 중요한 약이었습니다. 아마도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도 납약을 만들어 임금에게 진상했을 겁니다. 민간에서는 어린이에게 참새를 잡아 먹이면 마마(痲痲 : 홍역)를 깨끗하게 한다고 하여 참새를 잡았는데, 이를 새잡이라고 하였습니다. 납일에 내린 눈이 녹은 물(납설수)은 약으로 쓰였으며, 눈물에 적셔 두면 구더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섣달 마지막 날은 제석(除夕)으로서 2품 이상의 관리와 시종들은 대궐에 들어가 묵은해의 문안을 올리며 사대부집에서는 사당에 참례하였습니다. 연소자는 친척 어른들을 방문하여 묵은세배를 하고, 밤중까지 등불을 밝혀 들고 다녔습니다. 대궐 안에서는 제석 전날부터 연종포(연말에 쏘는 대포)를 쏘았으며, 화전을 쏘고 징과 북을 울리고, 폭죽을 터뜨리는 것은 대나(大儺)라는 역질(전염병)이나 귀신을 쫓는 행사의 하나였습니다.

제석날 밤에 민간에서는 집안 곳곳에 등잔불을 밝혀 놓고 밤을 새우는 풍습을 수세(守歲)인데, 속설에 제석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여 잠을 자지 않으려고 윷놀이를 하거나, 항간의 부녀자들은 널조각을 짚단 위에 올려놓고 양쪽 끝에 마주 서서 널뛰기를 즐겼습니다.

함경도 풍속에 빙등(氷燈 : 등잔 형태의 얼음 조각)을 만드는데 마치 원기둥 안에 기름 심지를 해 박은 것 같습니다. 징과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나희(儺戱 : 귀신 쫓는 놀이)를 행하였으니 이를 청단(靑壇)이라 하며 평안도 지방에도 비슷한 놀이가 있었습니다.

노량진 이그잼고시학원 역사 김유돈 선생님

데일리노컷뉴스 2006-12-07


토정은 조선 최고의 경세가 /1* @@ 한국사(서적)

이태복 전 복지부장관 '…이지함' 출간기념회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많은 사람들이 이지함을 그저 '토정비결'의 저자 또는 기인의 행적을 많이 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 토정은 조선 최고의 경세가였습니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토정 이지함(1517-1578)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책 '조선의 슈퍼스타 토정 이지함'(동녘 펴냄)을 출간했다. 이 전 장관은 24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출간기념 강연회를 갖고 토정의 현재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토정은 백성구제와 민생안정을 위해 헌신했고 상업과 해외교역의 권장, 지하자원 개발, 간척과 어염의 활용 등으로 국부를 증진시켜 허약해진 조선 사회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며 "또 임진왜란 13년 전에 대참화를 예고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방개혁과 민생안정 대책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 전 장관은 이어 "한국복지의 원조이기도 한 토정은 인(仁)의 실천을 통해 누구나 대인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보여줬다"며 "경(敬)의 자세로 대인이 되기를 힘쓴 한국사회의 진정한 사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은 2006년에 펴낸 '도산 안창호 평전'에 이어 저자가 쓴 두 번째 인물 이야기로, 저자는 "두 인물 모두 어린 시절부터 삶의 사표로 삼았던 인생의 스승들"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오는 28일 오후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저자 사인회도 가질 예정이다.

연합뉴스. 2011/05/24

5.18기록물ㆍ일성록 유네스코 유산 등재 /1* @@ 한국사

한국 보유 세계기록유산 총 9개로 늘어나

(런던.서울=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김태식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과 조선후기 국왕의 동정이나 국정 운영사항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일성록(日省錄)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국제자문위원회(IAC)는 2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맨체스터에서 제10차 회의를 열어 한국의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가 제출한 안건을 심의해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등재를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유네스코 사무국은 ICA 회의 결과를 25일 공식 발표한다. IAC의 등재 권고 결정이 나오면 사무총장이 통상 2~3개월 이내에 최종 확정하게 되지만 유네스코에서는 IAC 등재 권고 결정이 나면 등재가 확정된 것으로 간주한다. IAC는 지난해 3월 관련 자료들이 제출된 이후 소위원회를 구성해 등재 여건 등을 심사해왔다.

'5.18 기록유산 등재 추진위'는 정부기관 자료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자료, 시민 성명서, 사진·필름, 피해자 병원 치료기록, 국회 자료, 국가 보상 자료, 미국 비밀해제문서 등 5.18 전개 과정과 흐름을 보여주는 방대한 자료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국내 일부 우익단체가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반대 청원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으나, 김황식 총리가 국회에서 답변한 "이미 역사적 심판이 내려진 것인 만큼 그런(우익단체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IAC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IAC는 이와 함께 조선후기 국왕의 동정이나 국정의 제반 운영 사항을 매일 일기체로 정리한 연대기인 일성록에 대해서도 등재 권고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 국보 153호이기도 한 일성록은 조선후기에 국왕의 동정과 국정의 제반 운영사항을 매일매일 일기체로 정리한 연대기 자료로, 1760년(영조 36) 이후 1910년(융희 4)까지 151년치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질만 편찬된 유일본이자 필사본으로, 총 2천329책 전체가 온전하며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보관 중이다. 정조가 세손 시절에 쓰기 시작한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에 뿌리를 둔 일성록은 정조 즉위 이후에는 국가의 공식기록으로 편입됐다. 문화재청은 일성록이 단순한 조선후기의 역사 기록물에 그치지 않고 18~20세기 동ㆍ서양의 정치ㆍ문화 교류의 구체적 실상과 세계사의 보편적 흐름을 담은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일국사(一國史)를 넘어서는 세계적 중요성을 지닌 점이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이로써 한국은 9개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1997년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이 처음으로 등재된 이래 2001년 승정원일기와 직지심체요절, 2007년 조선왕조 의궤와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에 이어 2009년에는 동의보감이 이름을 올렸다. 4월 현재 전세계에서 83개국 193건이 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연합뉴스. 2011/05/24

세계기록유산 등재된 일성록은 /1* @@ 한국사

정조가 창안한 연대기..실록ㆍ승정원일기와는 달라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가 결정된 일성록(日省錄)은 조선 후기에 국왕의 동정이나 국왕이 결정에 개입한 국정의 제반 운영사항을 매일매일 일기체로 정리한 연대기 자료다. 1760년(영조 36)에서 1910년(융희 4)까지 151년치 기록을 담은 일성록은 한 질만 편찬된 유일본이자 필사본으로 전 2천329책이 모두 전한다. 원본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보관 중이며 국유물이다.

일성록은 정조가 세손 시절에 쓰기 시작한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를 뿌리로 한다. 이 때문에 일성록은 정조의 창안물로 간주된다.
정조는 논어에 나오는 증자의 말 오일삼성(吾日三省), 즉, "나는 매일 세 번 반성한다"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을 반성하는 자료로 삼고자 이 일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일기는 정조가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 국가의 공식 기록으로 편입된다. 정조는 규장각 관원들에게 매일매일 일기를 작성하게 한 다음 5일마다 그 일기를 정서해 자신에게 올려 결재를 받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성록은 정조의 개인 일기를 뛰어넘어 국정 일기로 전환된다.

일성록은 기존에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린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와 더불어 조선왕조 3대 연대기로 꼽힌다. 하지만 실록과 승정원일기가 지금의 국왕을 '상(上)'이라 해서 3인칭으로 표현하며 기사들을 시간 순서로 서술한 편년체(編年體)인 데 비해 일성록은 국왕을 1인칭 용어인 '여(予)', 즉, '나'라고 해서 국왕 주도의 기록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시간 순서가 아니라 주제 순으로 사안들을 기록한 강목체(綱目體)다. 일성록은 단순한 조선후기의 역사 기록물에 그치지 않고, 18~20세기 동서양의 정치ㆍ문화 교류의 구체적 실상과 세계사의 보편적 흐름을 담은 기록물이라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또한 한 질로만 편찬된 유일본이며, 왕명에 의해 국가기관이 작성해 국가 주도하에 보존 관리가 잘 이루어진 기록물로 그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연합뉴스. 2011/05/24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위한 심포지엄 개최 /1* @@ 학술대회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우선 추진대상인 남한산성의 다양한 가치 중 무형유산에 주목한 학술심포지엄이 26일 오후 2~6시 남한산성 행궁에서 열린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주관하는 이번 학술대회는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무형유산 가치정립'이라는 주제 아래 남한산성이 단순히 문화유산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무형유산의 무대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심포지엄은 박성용 아태무형유산센터 소장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유ㆍ무형 문화유산 보호의 통합적 접근'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이어 각 분야 전문가가 개별 발표를 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중앙대 김종대 교수는 남한산성 주변 마을에 전래하는 제사 민간신앙인 엄미리 장승제를 중심으로 검복리와 하번천리 장승제, 광지원리의 해동화놀이, 불당리의 지신밟기 등에 관한 연구성과를 선보인다.

신미혜 을지대 교수는 1925년 최영년이 편집한 시집인 해동죽지에 나오는 남한산성 내 토속음식인 효종갱에 대한 기록에서 출발해 이 음식을 재현하고 연구한 사례를 발표한다.

또한 조선후기 천주교인들이 남한산성에서 옥살이했다는 점에 착안해 남한산성과 천주교의 관계를 조명하는 발표와 백제 시조 온조왕을 모시는 숭렬전과 병자호란의 삼학사를 모신 현절사의 전례를 연구한 성과 발표도 이뤄진다. 남한산성과 불교의 관계도 분석한 논문도 공개된다.

연합뉴스. 2011/05/25

中 본초강목ㆍ황제내경, 세계기록유산 등재 /1* @@ 의학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중국이 25일(한국시각) 영국 맨체스터에서 폐막한 제10차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IAC) 회의에서 자국 전통의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본초강목과 황제내경을 나란히 기록유산에 등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문화재청과 유네스코 홈페이지(http://www.unesco.org)에 따르면 중국은 명나라 때 의사 이시진(李時珍)의 역작인 약물학서 본초강목(本草綱目(Ben Cao Gang Mu)과 2천년 전 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 Huang Di Nei Jing)을 각각 세계기록유산(the Memory of the World)에 등재하는 데 성공했다.

유네스코는 이 중 본초강목을 "전통 한(漢)의학 역사상 가장 방대한 의학서"(the most complete and comprehensive medical book ever written in the history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라고, 황제내경에 대해서는 "전통 중국 의학서로는 가장 이른 시기에 쓰인 가장 중요한 작품"(the earliest and most important written work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이라고 소개했다.

중국은 한국이 2009년 동의보감을 등재시킨 직후인 2010년 이들 2건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 동양의학의 종주국을 자처하던 중국에서는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그 주도권을 한국에 빼앗기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팽배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본초강목과 황제내경 등재 신청은 그런 위기의식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번 맨체스터 회의에서는 한국의 일성록(Ilseongnok: Records of Daily Reflections)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Human Rights Documentary Heritage 1980 Archives for the May 18th Democratic Uprising against Military Regime, in Gwangju, Republic of Korea) 등 총 45건을 신규 기록유산에 등재하기로 했다. 1886년 벤츠 설계도(독일), 1990년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와 2+4 조약(독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관련 기록물(네덜란드), 장-자크 루소 원고(스위스), 톨스토이의 장서와 원고 및 사진과 영상(러시아)이 포함됐다.

연합뉴스. 2011/05/26 


KBS역사스페셜,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편 /1* @@ 근현대사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KBS 1TV '역사스페셜'은 12일 밤 10시 '시대의 경계인 -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을 방송한다.
프로그램은 조선왕조 500년 망국한의 상징인 영친왕의 기구한 일생을 조명하고 그가 조선 백성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일생 침묵했던 이유를 추적한다.

영친왕 이은은 고종과 엄귀비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아들로, 순종과 덕혜옹주는 그의 배다른 형제다. 고종의 황제 양위식이 강행된 1907년 그는 10살의 나이에 황태자에 책봉되지만 4개월 뒤 초대 조선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강제로 일본 유학 길에 오른다. 사실상의 볼모였다. 그렇게 일본에 끌려가 일본육군사관학교 등을 거치며 군인의 길을 걷고 있던 영친왕은 역시 일본에 의해 1917년 일본 황족 여성 이방자와 결혼하게 된다. 고종이 승하한 이듬해 강행된 결혼식을 둘러싸고 조선의 백성들은 아버지의 삼년상도 마치기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며 분노한다.

프로그램은 태평양 전쟁 발발 직전인 1941년 중국 전선을 시찰하는 일본 육군 중장 신분의 영친왕 이은의 사진을 공개한다. 제작진은 "메이지 시대부터 일본 군사 관련 자료가 총망라된 일본 방위성 연구소에서 낡은 사진첩을 발견했다"며 "일본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되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시기, 중국 전선을 시찰하던 육군 중장 영친왕의 모습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프로그램은 또한 1926년 일본 육군성에서 작성한 '밀대일기(密大日記)' 속 영친왕에 관한 기록도 소개한다.

연합뉴스. 2011/05/10

국사편찬위, 고교 한국사 교과서 6종 분석 “내용 오류 많고 짜깁기… 서술도 가독성 떨어져” /1* @@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올해부터 고등학교에 배포된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사실 오류가 다수 발견됐다”는 내용의 감수 결과를 내놓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 교과서 내용의 편향성에 이어 집필진의 전문성도 도마에 오른 셈이다. 본보가 9일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편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 6종을 감수한 결과 ‘교과서 대부분에서 내용상의 오류가 있었고 서술에도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국편은 이런 내용의 감수 결과 의견서를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하면서 ‘교과서는 시대별로 전공자, 현장교사 등이 함께 저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수 과정에서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은 사실 오류다. 국편에 따르면 이번 검정 교과서들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 선사시대의 시기를 통일하지 않은 종전 국정 교과서의 오류를 답습했다. 역사 연표도 정확하지 않았고, 시대사별 사건 지도 역시 국정 교과서를 베끼는 수준에 그쳤다.

집필진은 학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료를 인용할 때도 원자료를 활용하지 않았다. 국편은 “자료를 인용할 때는 엄격성이 필요한데 사실을 보여주는 1차 자료가 아닌, 연구자의 개인 시각이 들어간 2차 가공 자료나 신문기사를 인용했다”고 지적했다.

교과서 구성과 서술에도 문제가 있었다. ‘교과서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서술과 만연체 문장으로 가독성이 떨어져 학생들이 역사를 외우는 과목으로 생각하게 한다. 역사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국편은 분석했다. 또 역사 교육 과정과 내용에 대한 고민 없이 기획돼 우리 민족의 문화 발전이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사 생활사 경제사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고 정치사 위주로 서술돼 있다고 지적됐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교과서 검정 및 감수 과정을 지켜보면 집필 원본의 수준이 심각하다는 걸 절감한다”며 “기존 국정 교과서를 짜깁기해오는 저자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편향성 논란이 계속되자 집필자 37명은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협의회’를 만들어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협의회를 주도하는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집필자 개개인에 대해 근거 없이 친북 또는 좌경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매도하는 데 대응하기 위해 협의회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강혜승 기자
동아일보 2011.05.10

고추가 日서 전래됐다?…천만에요! /1* @@ 의학사

고문헌 증거, 고추는 한반도에서 자생했던 식물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전래된 것이 아니라 수천년 전부터 한반도에 자생해왔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박사 연구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경란 연구팀은 최근 '고추 이야기'라는 책을 발간했다고 9일 밝혔다.

연구팀은 그동안 '우리나라 김치 역사가 100년 밖에 안 된다', '고추장도 원래는 후추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고추장이 됐다' 등 허황된 설이 수없이 많아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200여개가 넘는 옛 문헌을 찾아본 결과 '일본 전래설'의 모순을 발견하고 확실한 답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권대영 박사는 1700년대에 발간된 고문서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남만초(일종의 태국고추)라는 매운 고추가 일본을 통해 들어 왔다. 그런데 그 전부터 있었던 우리나라 고추는 매우 품질이 좋고 왜관에서 팔면 심히 이득이 남는다"는 기록이 있음을 제시했다. 권 박사는 또 "중국 고서 시경에 이미 김치에 대한 기록도 있고 서기 400년쯤에는 고추장을 의미하는 초장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서 "이같은 점을 감안할 때 고추가 한반도에 자생했던 식물"이라고 주장했다. 권 박사는 "우리나라 김치나 고추장 같은 전통 발효식품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조상의 지혜와 혼이 들어가면서 발전해온 과학적인 식품"이라며 "고추의 일본 전래설 같은 잘못된 설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CBS 뉴스 2011.05.09
임미현 기자

고교생 내년부터 한국사 필수로 배운다 /1* @@ 한국사

공무원시험 한국사 반영확대ㆍ대입 한국사 반영 권장
교과내용은 쉽고 재미있게…한국사 소양 갖춰야 교사 임용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이준삼 기자 = 내년 고교 입학생부터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배우게 된다. 5급 공무원 공채시험에서도 한국사 과목이 내년부터는 필수가 되는 등 각종 공무원 시험에서 한국사 반영이 확대되며 대학 입시에서도 한국사를 반영하는 것이 적극 권장된다. 초중고의 역사교과서는 쉽고 재미있게 바뀌고 일정 수준 이상의 한국사 소양을 갖춰야 교사가 될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와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위원장 이배용)는 22일 오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역사교육 강화방안'을 공동 발표했다. 교과부는 "학생들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우리 영토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갖게 하려고 이번 방안을 마련했다"며 "역사교과서에서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내용을 강화하며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성도 높이겠다"고 밝혔다.

방안에 따르면 교과부는 현재 고교에서 선택 과목인 한국사를 2012학년도 고교 입학생부터 문과ㆍ이과ㆍ예체능계열, 인문계고ㆍ특성화고 등 계열과 학교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고교생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으로 지정한다. 이에따라 전국 모든 고교생은 졸업 때까지 총 85시간(5단위) 안팎으로 한국사 과목을 배워야 한다. 현행 2009 개정 교육과정에 포함된 과목 가운데 필수가 된 과목은 한국사가 처음이다. 교과부는 한국사 필수과목화에 연계해 대학 입시에서도 연관성 있는 모집단위에서는 한국사를 반영하기 위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총장, 교육감, 정부, 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교육협력위원회를 통해 한국사 반영을 각 대학에 권고하기로 했다.

각종 공무원 시험에도 한국사 반영이 확대된다. 학교현장 교사들의 한국사에 대한 소양을 키우기 위해 2013년부터는 신규 교원을 임용할 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급 이상자에게만 임용시험 응시자격을 주는 방안이 추진된다. 2012년부터 5급 공무원 공채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성적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한국사 과목이 필수가 되는 것을 비롯, 사법시험, 법원 5급 시험, 국회 9급 시험에서도 한국사 과목을 포함하는 방안이 관련 부처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다.

역사교육과정과 교과서도 학생들이 쉽게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대폭 수정된다. 초ㆍ중ㆍ고의 역사교과서 내용이 모두 선사시대∼현대에 이르는 통사적인 기술로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데다 공부해야 할 분량이 많고 수준이 높아 학생들이 역사를 지루하고 어려운 암기과목으로 인식해 오던 문제점을 개선한다. 교과서는 탐구ㆍ체험ㆍ토론 활동 내용을 강화하고 일화나 인물 이야기, 특정 주제 중심으로 서술하되 초중고 학교급별 내용을 차별화하는 등의 방안이 현재 연구되고 있으며 8월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2011.04.22

조선통신사 역사관 개관 /1## @@ 조선통신사(뉴스)

(부산=연합뉴스) 신정훈 기자 = 조선시대 일본 땅에 '조선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조선통신사가 부산에서 되살아난다. 부산시는 부산 동구 범일동 자성대공원 조선통신사 역사관을 21일 개관한다.

조선통신사는 조선 국왕이 일본 막부장군에게 파견한 공식 외교사절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우호와 평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비롯해 한의학 등 조선의 문화와 문물을 일본에 전파했다. 조선통신사 역사관 건립은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알리고, 부산을 대표하는 역사문화관광 브랜드로 개발하기 위해 추진됐다.
사업비 35억원이 투입돼 자성대공원 내 부지 850㎡, 전체면적 578㎡에 지상 2층의 규모로 지어졌다.

역사관의 1층은 관람객을 맞이하는 환영의 공간,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배경, 행로 및 한일교류를 위한 현재의 노력까지를 보여주는 3D 영상홍보관, 통신사의 정의 및 역할, 삼사 임명식 등을 패널과 영상 등으로 전시한 전시공간으로 꾸며졌다. 2층은 관람객들이 조선시대의 통신사가 되어 그 행로를 그대로 따라가 볼 수 있도록 했다.

영가대 집결, 해신제 제문 등을 보여주는 '조선을 떠나다', 파도를 넘어 일본으로 가는 뱃길, 일본에 도착한 통신사 퍼레이드 등을 모형과 화려한 빔영상으로 재현한 '만남'. 상륙한 통신사 일행에 대한 환영과 접대를 비롯 쓰시마~교토~에도로 이어지는 통신사 행로를 보여주는 '여정', 한일 의학교류, 조선어 배우기 등 일본 내 조선문화 열풍을 확인할 수 있는 '일본 내 조선의 문화(한류)' 등으로 구성됐다.

야외에는 영가대 현장, 통신사의 길 등 포토존이 마련됐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하며, 관람료는 무료다. 한편, 개관식에는 허남식 시장을 비롯해 재부산 일본총영사, 지역 기관.단체장, 시민 등 1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2011/04/20 


한의원 일요일 진료 기타

평   일 오전 9시 - 오후 7시


토요일 오전 9시 - 오후 5시


요일 오전 9시 - 오후 1시




 동작구 대방동 333-3 남지빌딩 3층 

  한의원 일요일진료, 한의학박사 




<日대지진> 전후 최대 위기 일본 /1* @@ 동양사

오뚝이 '위기극복 DNA' 저력 발휘하나
'도전'에 맞선 '응전'의 역사 재연될까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 대지진, 쓰나미, 방사능 공포..2차, 3차 재앙 속에서도 일본 국민의 '위기극복 DNA'가 발동할 것인가.
지난 11일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대지진으로 2차 세계대전 뒤 최대의 위기를 맞은 일본이 휘청거리고 있다. 지진이 발생한 지 4일이 지났지만 정확한 피해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사망자가 수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가 점점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강진과 쓰나미의 여파가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폭발이라는 대형 악재로 번지면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영향이 명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만약 원자로가 녹으면서 주요 방사능 유출 사고로 이어진다면 이미 지진과 쓰나미로 치명타를 입은 일본 열도는 상당기간 회복하기 어려운 재앙과 공포에 휩싸이게 될 전망이다.

1995년 고베(神戶) 인근에서 발생했던 한신·아와지 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 진도 7.2) 당시 사망자가 6천400여명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지진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있다. 환태평양 지진대에 걸쳐있는 일본은 역사적으로 무수한 지진을 경험해왔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1923년 발생했던 간토(關東)대지진이다. 대규모의 조선인 학살로 이어져 더욱 유명해진 간토대지진의 사망자 수는 10만 명에 달했다.

역사적으로는 1896년 발생했던 메이지산리쿠(明治三陸) 지진이 2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으며 1933년 있었던 쇼와산리쿠(昭和三陸) 지진 당시의 사망자는 3천64명이었다.

일본의 재난은 지진만이 아니었다. 1945년 종전(終戰)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투하된 미군의 원자폭탄으로 인한 사망자는 20만명이 넘었으며 1945년 3월10일 이뤄진 미군의 '도쿄 대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도 10만명에 달했다. 일본의 참담한 패전으로 끝난 2차 대전 직후 일본의 상태는 폐허만 남은 '절망의 땅' 그 자체였다. 수도 도쿄(東京)만 해도 연합군의 반복된 폭격으로 성한 건물이 거의 없었으며 일본 국민들은 패전의 잿더미 속에서 극심한 식량난과 질병에 시달렸다. 그러나 도저히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패전의 절망에서 일본이 다시 일어서는 데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종전 5년 뒤 이웃나라인 한반도에서 터진 6.25 전쟁의 특수가 크게 한몫 했지만 일본인들은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절망을 딛고 일어서 패전 뒤 불과 20년도 안된 1964년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기적을 일궈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에도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을 밑거름으로 복구활동을 벌인 결과 고베는 불과 3~4년만에 아름다운 미항(美港)의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이처럼 일본의 역사는 거듭된 재난이라는 도전에 맞선 응전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2차 대전 뒤 최악이라는 이번 대지진의 참화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마냥 절망 속에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란 희망과 기대를 갖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대지진은 피해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지진 뒤에 순식간에 해안 마을을 삼켜버린 거대한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 공포까지 겹치면서 일본 열도를 전후 최악의 위기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경기침체와 정정불안, 국가부채 급증이라는 악재로 비틀거리고 있는 '일본호(號)'에 엎친데 덮친 격의 치명타를 안겼다는 점에서 전대미문의 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일본인들은 지진 발생 뒤 대처 과정에서도 남다른 '위기극복 DNA'를 갖고 있음을 일부나마 보여줬다. 쓰나미가 휩쓸고간 최악의 무질서 상황 속에서도 약탈이라든가 새치기와 같은 행위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누구를 탓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에 힘을 모았다. 이 같은 모습은 현재의 일본이 국가부채가 1천조엔에 달하고 인구의 급속한 노령화로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리라는 기대를 갖게끔 하는 상징적 징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항상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가장 빛났던 것이 일본인들의 단합력이었다. 무엇보다 세계인들은 과거 극단적 절망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번영을 일구었던 일본의 놀라운 저력을 기억하고 있기에 전후 최대의 위기라는 이번 대지진의 참화 속에서 발휘될 일본인들의 '위기극복 DNA'에 희망을 걸고 있다.

연합뉴스. 2011/03/15

왕조실록서 보는 조선의 지진과 쓰나미 /1* @@ 한국사

1681년 설악산 큰바위 붕괴하고 쓰나미 덮쳐
"한반도, 쓰나미 안전지대 아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반정을 통해 집권한 조선왕조 제11대 왕 중종(재위 1506~1544)은 재위 20년째인 1525년 윤 12월15일에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는 전교(傳敎)를 내린다. "내가 즉위한 지 이제 두 기(紀.12년)가 되어 가는데 재변이 생기지 않은 해가 없었다. 올해 경기 지역 가뭄은 근고(近古)에 없던 일인데다 돌림병ㆍ일식ㆍ지진ㆍ천화(天火. 화재)ㆍ견요(犬妖)ㆍ동뢰(冬雷. 겨울 우레)ㆍ해일(海溢) 등의 변괴가 일다가 마침내는 흰 운기(운기)가 해를 꿰기까지 했다." 실제 그의 재위 기간을 보면 해일을 비롯한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다만 그가 말하는 해일이 해중 지진과 연계된 자연재해, 즉, 쓰나미(津波)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의 아들 명종(明宗. 재위 1534~1567) 또한 이와 비슷한 일로 골머리를 앓았다. 명종실록 12년(1557) 4월4일 기록을 보면 함경도 함흥과 평안도 용천ㆍ창성ㆍ곽산(郭山)ㆍ의주 일대에 천둥 번개가 치고 북풍이 크게 불었으며 물을 쏟아붓듯 우박이 내렸는가 하면 청홍도(충청도) 서천에는 조수가 범람해 해변의 제방과 전답을 덮쳐 3백여 결(結)이 피해를 보았다. 이렇게 되자 사헌부에서는 해일ㆍ지진ㆍ우충(羽蟲. 병충해 등)의 변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이유를 들어 왕이 외부 행차를 자제하고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장계를 올리기도 했다. 역시 여기서 말하는 해일이 쓰나마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해일이 발생한 시점이 음력 4월 초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계절로 보아 그 원인으로 태풍을 지목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쓰나미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숙종 7년(1681) 5월11일 강원도 일대를 강타한 지진은 쓰나미를 동반했음이 명백하다. 이 날짜 기록은 다음과 같다.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와 같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의 신흥사와 계조굴(繼祖窟)의 큰 바위가 모두 붕괴했다. 삼척부 서쪽 두타산 층암(層巖)은 예부터 돌이 움직인다고 했는데 모두 붕괴됐는가 하면 부(府) 동쪽 능파대(凌波臺) 물속 10여 장(丈) 되는 돌이 가운데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조수가 밀려가는 모양과 같았는데, 평일에 물이 찼던 곳이 1백여 보(步) 혹은 50~60보 노출됐다. 평창ㆍ정선에도 산악이 크게 흔들려서 암석이 추락하는 변괴가 있었다. 이후 강릉ㆍ양양ㆍ삼척ㆍ울진ㆍ평해ㆍ정선 등지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땅이 움직였는데 이 때 8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

이보다 23년 앞선 현종 9년(1668) 6월23일에 일어난 지진 또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볼 때 쓰나미를 동반했다. "평안도 철산에서 바닷물이 크게 넘치고 지진이 일어나 지붕의 기와가 모두 기울어졌으며 사람이 더러 놀라 엎어지기도 했다. 평양부와 황해도 해주ㆍ안악ㆍ연악ㆍ재령ㆍ장연ㆍ배천ㆍ봉산, 경상도 창원ㆍ웅천ㆍ충청도 홍산, 전라도 김제(金堤)ㆍ강진(康津) 등지에서 같은 날 지진이 있었다. 예조가 중앙에 단(壇)을 설치하고 향과 폐백을 내려보내 해괴제(解怪祭. 사악함을 물리치는 의식)를 지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따랐다."

왕조실록에는 쓰나미로 볼 가능성이 있는 기록도 존재한다. 효종이 즉위한 1649년 11월6일 전라도 일대에서 발생한 해일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 날짜 실록에서는 "전남도의 부안ㆍ함열ㆍ옥구ㆍ무장ㆍ만경ㆍ고부 등지의 여섯 고을에 해일이 일어나고 여산과 함열에서는 지진이 발생했다"고 적었다. 해일과 더불어 지진이 동시에 발생했고, 계절로 보아도 한겨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서 해일은 쓰나미일 가능성이 있다.

영조 20년(1744) 8월9일 관측된 해일도 지진과 연동한다는 점에서 쓰나미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이 날짜 영조실록에는 "공홍도(公洪道) 연해 고을에서 해일이 있었고, 이산(尼山)과 연산(連山) 등지의 고을에서는 지진이 있었는데, 소리가 은은(隱隱)하게 동쪽 방향에서 일어나 서쪽 방향에서 멈추었다"고 했다.

이 외에도 국사편찬위원회가 원문과 번역문을 제공하는 조선왕조실록에서 '해일'이나 '지진'과 같은 용어를 통해 검색하면, 해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빈발하는 모습이 발견되며 그 절대다수는 태풍에 동반된 것으로 파악된다. 지진 또한 발생 기록이 무수하게 보인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조사연구실 최범영 박사는 15일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해일이나 지진 발생 기사 중에서도 현종 9년(1668) 6월23일과 숙종 7년(1681) 5월11일 기록은 분명히 지진에 동반된 쓰나미 발생을 보여준다"면서 "중국이나 일본 관련 기록도 아울러 검토해야 쓰나미의 전모가 드러날 것이지만, 한반도가 쓰나미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1/03/15

동의보감 영어로 번역돼 각국에 배포된다 /1## @@ 조선통신사(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의학 서적으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이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돼 출간된다. 보건복지부는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앞두고 이 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영역을 진행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17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해 한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평가받는 동의보감이 영역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의보감 총 5편 25권 가운데 지금까지 침구편(鍼灸篇) 1권, 탕액편(湯液篇) 3권, 내경편(內經篇) 4권, 외형편(外形篇) 4권 등은 영역이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또 유행성병, 급성병, 부인과, 소아과 등에 관한 잡병편 11권은 이달 중에 영역 수행기관을 공모한 뒤 작업을 진행해,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이 되는 2013년까지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복지부는 완성된 동의보감 영역본을 한의학과 관련이 있는 50여개 국가 주한 공관과 해외 연구기관 및 국제기관에 배포해 우리 전통 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기로 했다. 또 국내 한의대와 한의학 관련단체, 유관 기관 등에도 배포해 연구 및 홍보 자료로 활용토록 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동의보감 영역은 발간 400주년을 맞는 동의보감의 우수성과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1/03/10 


'한의학 박사 1호' 류근철 교수 별세 /1* @@ 의학사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대한민국 한의학 박사 1호(1976ㆍ경희대)'인 류근철 KAIST 교수가 8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86세.
류 박사는 최근 노환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뒤 끝내 영면했다.

1926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의사 직업을 택했다. 경희대 한의학 석사ㆍ박사, 모스크바 국립공대 의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KAIST 명예이학박사ㆍ경희의료원 한방병원 부원장ㆍ경희대 의대 부교수ㆍ경희한방의료원 부원장ㆍ러시아 모스크바국립공대 교수 등을 거치며 평생 한의사이자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1972년 세계 최초로 침 마취 맹장수술에 성공하고 '류박사 건강 증진기', '추간판 및 관절 교정기구' 등을 개발, 국내외에서 10건의 특허도 취득했다. 이처럼 한의학계에 의술로서 큰 족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아낌없는 기부와 후학에 대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2008년 그는 KAIST에 578억원 상당의 부동산(임야ㆍ빌딩ㆍ아파트)을 기부했다. 이는 국내 개인 기부액으로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사상 최대 기록이다. KAIST는 감사의 뜻으로 지난해 준공된 스포츠 콤플렉스 시설에 류 박사의 이름을 붙였고, 향후 세종시에 들어설 새 캠퍼스의 이름도 '류근철 캠퍼스'로 명명할 예정이다. 2009년부터 KAIST 안에 '닥터 류 헬스 클리닉', 'KAIST 인재ㆍ우주인 건강연구센터'를 마련해 직접 학생들의 건강을 돌보기도 했다.

슬하에 두 아들 인희(연세대 철학과 교수), 광희씨와 세 딸 영희, 선희, 정희씨를 뒀다. 영안실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B2 13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0일이다. ☎ 010-3678-4369


연합뉴스. 2011/03/08

KBS 역사스페셜, '한반도의 매사냥' 편 /1** @@ 한국사(기타)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KBS 1TV '역사스페셜'은 10일 밤 10시 '떴다! 해동청 보라매 - 한반도의 매사냥'을 방송한다.

지난해 11월16일 매사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몽골, 아랍, 영국, 프랑스, 체코 등 동서양 11개국이 함께 지정되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수렵기술 중 하나인 매사냥은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프로그램은 역사 속에 스며있는 우리 매사냥의 흔적을 추적한다.

최근 베일에 싸여 있던 백제 금동관이 복원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내면서 금동관 장식이 비상하는 새의 모습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매의 나라'로 불리던 백제는 금동관에 매가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일본 시즈오카에 있는 에도막부 초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상은 왼팔에 한 마리의 매를 들고 있다. 도쿠가와는 매사냥 마니아로 1천 회 이상의 매사냥을 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가 사용했던 기술이 담겨 있는 매사냥 교과서 '회본응감' 안에는 서기 355년 일본에 매사냥을 최초로 전해주고 응견신(鷹見神)으로 추대된 백제인 주군(酒君)과 그가 남긴 백제식 매사냥 기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국의 황제들이 가장 탐내던 매, 해동청(海東靑)은 연해주와 함경도 해안 일대에서 서식했다고 알려져 있다. 뛰어난 사냥능력과 영리함으로 자신보다 큰 원숭이나 고니도 잡을 수 있었다는 해동청을 얻기 위해 중국의 황제들은 전쟁도 불사했다.

연합뉴스. 2011/03/09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 = 김남일 지음 /1## @@ 의학사(한국서적)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연구한 '유의'(儒醫)를 소개한다.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였던 이황은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양생을 몸소 실천했으며 실학자 정약용은 문집인 '여유당전서'에 의서를 두 종 포함시킬 정도로 의학연구에 정진했다.

경희대 한의대 교수인 저자는 유의들이 어떻게 자연관, 인간관, 질병관, 치료 경험 등을 축적하면서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대중의 삶과 사회 변혁에 기여했는지 살펴본다. 빙허각 이씨, 사주당 이씨 등 여성 유의들의 활약상도 소개한다. 들녘. 292쪽. 1만5천원.

연합뉴스. 2011-02-24 


이황도 박지원도 민중의 병 고치는 의사였다 /1## @@ 의학사(한국서적)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고 했던가. 지식 탐구에 미친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의학(의술)으로 민중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부제 ‘유의열전(儒醫列傳)’이 말해주듯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을 연구하고 의술을 펼친 ‘유의’들을 총망라했다. 허준, 유이태, 양예수 등 몇몇 의사를 제외한 등장인물 대부분이 유학자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박지원을 비롯해 정약용, 박제가, 이익 그리고 세조 이유, 정조 이산 등이 의학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는 얘기만으로도 귀가 솔깃해진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도 의사가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조선일까. “유학을 국시로 했던 조선 전 시기에 걸쳐 유의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조선의 통치이념과 유학의 학문적 지향점 그리고 의학이 추구하는 바가 일맥상통했기 때문이다.”

이황은 자신의 건강과 가족의 질병치료를 위해 의학에 입문한 뒤 주위에 의술을 전파한다. 그런가 하면 가업계승(김응삼)의 차원에서, 단순한 학문적 탐구심(김시습) 때문에 의술과 연을 맺은 이들도 있다. 책은 유의가 된 동기를 시작으로 궁중, 대민치료, 국제교류 등 활동무대별로 인물들을 구분해 나간다. 아울러 유의들의 활약상을 생활의학, 구급의학, 전염병, 소아학 등 분야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허준의 <동의보감> 등 의학서와 인체생리도, 처방전 등의 삽화를 곁들이고 당시 정치적 배경까지 부연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여성용 백과사전을 펴낸 빙허각 이씨, 태교와 관련한 지식을 집대성한 사주당 이씨 등 여성 유의도 등장한다. 특히 전통의학 가운데 일반인에게는 낯선 구황의학(전염병과 기근 등의 상황에 닥쳤을 때 대처 방안)을 다루고, 수의학과 법의학도 돋을새김해 시선을 끈다. 말과 소가 주요 운송·생계수단이었으니 수의학은 필수였을 터. 이창신과 권응창이 가축 전염병 예방·치료 등에 나섰고 수의학은 국가적으로 보호·육성됐다고 한다.

살인사건의 규명 과정을 파헤쳐 우리를 법의학의 세계로 빠지게 한 ‘미드(미국 드라마)’에 못지않은 과학수사가 조선에도 있었다. 어명으로 법의학서가 편찬됐다. 법의학 영역을 개척한 의서로 평가받는 구택규의 <증수무원록>은 한글과 주석이 붙은 <증수무원록언해>로 진화해 구한말까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지침서로 쓰였다. 그의 아들 구윤명은 실용성을 보강해 <증수무원록대전>을 완성했다. 이 서적은 갑오개혁으로 서구식 재판소가 들어선 이후에도 채용됐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내용과 수준이 서양에서 다루는 법의학 서적들에 비해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단순 치적만 나열했다면 요즘 보기 힘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절실함이 와닿지 않았을 터. 저자는 당대 지식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의 삶과 사회 변혁에 기여했는지를 밝히고 싶었다고 한다. 무릇 정치란 세상을 바로잡아 모든 백성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강산은 수없이 변했지만 ‘이용후생’을 실현시키려 애쓴 유의들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학에서 한의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한의학의 세계화를 역설한다. 유의들의 치료법과 생명사상이 중요한 콘텐츠가 된다고 한다. 열전이다 보니 ‘엑기스’ 추출에 집중했다. 그래서 일부 인물의 경우 설명이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중을 최고로 아는 ‘미친 지식인’을 집중 조명한 후속작들의 출현을 촉구하는 모양새다. 1만5000원


고영득 기자

경향신문 2011.02.25


선비 출신 의사들의 진정한 ‘仁術’ /1## @@ 의학사(한국서적)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유의열전 / 김남일 지음 / 들녘

고려 신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4대에 걸쳐 어의(御醫)를 지내며 벼슬이 판태의감사지다방사(判太醫監事知茶房事)에 이른 윤응첨(?~1228)의 묘지명을 보면 그의 집안이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의관(醫官)을 지낸 가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묘지명의 마멸이 심해 모두 판독하기는 어렵지만 자검(資儉)이라는 이름을 가진 윤응첨의 장인도 어의였다. 윤응첨의 묘지명 분석을 통해 “의사가 삼세(三世)가 아니면 그 약물을 복용하지 말라(의불삼세불복기약·醫不三世不服其藥)”는 의가(醫家)의 격언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숙종 때 활동한 두과전문의(痘科專門醫) 유상(생몰년 미상)은 숙종과 왕세자의 천연두 치료에 공을 세워 문반직 벼슬에까지 올랐으며 그의 후손 유중림(생몰년 미상)도 영조 때 내의원에서 벼슬하는 등 의학을 가업계승이라는 형태로 이어갔다. 유중림은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늘리고 보충한 ‘증보산림경제’를 편찬한 인물이기도 하다.

경희대 한의대 교수인 저자가 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유학을 공부한 선비 출신 의사라고 할 수 있는 ‘유의(儒醫)’ 집단을 설정한 뒤 이들을 중심으로 한의학의 역사 및 정체성을 살펴본 것이다. 다만 저자의 ‘유의’에 대한 정의가 일반적인 관례와는 달라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당황할 수 있다.

윤응첨과 유상을 비롯해 허준, 유의태, 양예수, 전순의 등과 같이 우리가 사서나 TV 드라마 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이름난 한의사들 외에 저자는 정약용과 박제가, 이익, 이황, 최명길, 유성룡, 최한기 등의 유학자와 철학자는 물론, 세조와 정조 임금까지도 의서를 편찬했다거나 의학에 대한 소양이 높았다는 이유로 ‘유의’로 분류하고 있다.

조선시대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대대로 의업에 종사해온 중인계층에 속한 업의(業醫)와 양반출신의 ‘유의’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저자는 책에서 ‘유의’의 범주를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연구한 사람들까지로 확대했다. 이처럼 ‘유의’의 개념에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의학연구에 정진했던 학자들을 포함시키는 바람에 내로라하는 사대부 관료와 유학자들까지 ‘유의’의 범주에 포함해 소개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이처럼 ‘유의’의 개념을 확대 적용한 것을 차치하고 본다면 책에는 한의학과 관련된 흥미로운 인물과 내용들이 많다. 1809년 ‘규합총서(閨閤叢書)’라는 여성용 백과사전을 편찬한 빙허각 이씨(1759~1824)나 19세기 태교 관련 지식을 집대성한 인물인 사주당 이씨 등 조선후기에 활동한 여성 ‘유의’가 바로 그러한 사례다. 이와 함께 수의학과 법의학도 한의학의 중요한 부분으로 본 저자는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 편찬 등 대를 이어 법의학을 연구한 구택규(1693~1754)·구윤명 부자도 소개한다. 저자는 “‘유의’는 우리 민족의 본원적 정신세계인 생명에 대한 외경사상을 우리에게 전달해준 집단”이라고 책에서 말한다.

최영창기자

문화일보 2011.02.25


김시습은 '단전학파의 시초'였다 /1## @@ 의학사(한국서적)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
김남일 지음|들녘|292쪽|1만5000원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보다는 좀 늦지만 조선시대에 인체의 해부를 중요하게 여긴 '이단아'가 있었으니 바로 전유형(全有亨·1566~ 1624)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길에 널려 있는 시체를 여럿 해부해 사람 치료에 이를 활용했다. 광해군 때에는 시약청 등을 드나들며 능력을 발휘, 의술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인조반정 이후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됐고, 나중에는 이괄의 난과 관련 있다는 모함을 받아 의술을 후대에 전하지 못했다. 그가 죽자 사람들은 시체를 해부한 벌을 받은 거라며 쑥덕였다.

경희대 한의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전유형처럼 유의(儒醫), 그러니까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연구해 환자를 진료하거나 의서를 편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 전기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배꼽 밑 일촌 오푼의 단전을 잘 보전하면 몸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 조선단학파의 시작을 열었다. 유학적 자연관을 바탕에 깔고 의학 연구에 매진한 유의들의 수준은 매우 높아서 한의학을 연구하는 계층 가운데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며 학문 발전을 선도했다. 학문적 탐구심 때문에,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자신의 건강과 가족 질병치료 등 다양한 이유로 의학을 연구한 유학자들의 활약상이 짤막짤막하게 정리됐다.

 

 

김경은 기자

조선일보 2011.02.26


이황·송시열·정약용이 의사? 조선 유의,백성을 돌보다 /1## @@ 의학사(한국서적)

역가에 파묻힌 의사(醫師)들에 관한 책이 출간됐다. 책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아우르며 당대 유명했던 의사들을 소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의사라는 이력보다 정치가나 학자로 명성을 날렸던 이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이다. 주자학의 대가 퇴계 이황(1501~70)과 송시열(1607~89), 그리고 실학자 정약용(1762~1836) 등의 의학자로서의 면모가 책을 통해 새롭게 조명된다.예컨대 어렸을 때부터 잔병 치레가 잦았던 이황이 직접 의학을 공부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지인에게 직접 처방전을 써준 것. 재상 출신인 송시열이 당대 치료법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의서 <삼방촬요(三方撮要)>를 집필한 사실, 정약용이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서양 의학을 습득하고 의학서를 쓴 일화 등이다. 책은 이들을 유의(儒醫)라 부른다.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연구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책은 우선 이들의 탄생 배경부터 되짚는다. 삼국시대부터 이미 의사들이 존재했고, 고려시대에는 과거 제도를 통과한 이들이 의사로 활동했다. 조선시대에는 민간에서뿐 아니라 유학자 중에서도 의사들이 대거 배출됐다. 이는 한국의 의학이 시초부터 지식인 계층인 유자(儒者) 중심으로 연구됐기 때문이다. 신분사회에서 백성을 편안하게 돌봐야 한다는 지식인의 사명감에 기반해 자연스럽게 의학을 연구한 것으로 파악된다. 예나 지금이나 병을 치료해 목숨을 구하는 일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만큼이나 중시됐다.

책은 다양한 유의를 소개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해부학을 꺼렸던 한의학에서 전유형(1566~1624)은 임진왜란 때 길에 널려 있는 시체를 여러 차례 해부해 사람 치료에 활용했다. 조선 후기 유행했던 천연두 퇴치를 위해 박제가(1750~?)는 두가(천연두 딱지)를 잘게 가루 내 물과 함께 환을 만들어 코로 들이마시는 인두법을 최초로 실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책은 태양인 등 사상체질 의학을 확립한 이제마(1837~1900)와 원나라에 파견돼 세조 쿠빌라이를 고쳐 준 설경성(1237~1313) 등 다양한 인물들과 한의학의 역사적 의미를 함께 버무린다.

한의사 출신으로 한국 의학사를 연구해 온 저자는 유의의 활약상을 토대로 글로벌 시대 한의학의 역할과 관련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한다. 저자는 "한의학에 숨어 있는 학술 사상, 관련 인물, 설화, 치료법 등은 한국의 정신문화의 바탕이 되는 무형의 문화 콘텐츠다. 무궁무진한 가치를 포함하고 있는 우리의 정신적 보물을 세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지원기자

한국일보 2011.02.25


퇴계와 다산은 왜 의학을 배웠을까 /1## @@ 의학사(한국서적)

안타깝다. 책의 소재는 매력적이지만, 그걸 담아낸 그릇이 요즘 말로 좀 ‘구리다’. 경희대 한의대 교수인 저자의 자부심대로 유의(儒醫), 즉 유학자 의사에 대한 규명은 이 책이 처음이다. 문제는 스토리텔링과 디테일인데, 이런 유의도 있고, 저런 유의도 있었다는 식으로 시종한다. 그들이 어떻게 전통 의학에 필이 꽂혔고, 구체적으로 어떤 의학적 성취를 이뤘는지에 대한 풍부한 정보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유의 열전』은 ‘개척상’감이다.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 조상들의 건강을 지켜온 파수꾼 그룹에 대한 조명인데, 삼국시대 백제의 의박사(醫博士)와, 신라의 교육기관 ‘의학’에서 활동하던 전문가도 등장시키지만, 조선시대 유의 수백 명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이 지점에서 그간의 통념도 깨진다. 중인계층 의사만이 아니고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등 사대부들이 줄줄이 나온다.

유의란 유학에 대한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의학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들은 가업을 잇던 중인 출신의 업의(業醫), 약종상(약재 판매상)과 함께 전통시대 질병과 싸웠던 핵심 멤버다. 1905년 일제 통감부가 한의학 평가절하를 시작할 때도 앞장서 반대했던 그룹이다. 눈에 띄는 게 퇴계를 유의로 분류한 점이다. ‘개업의사’라는 개념에서 잠시 벗어난다면, 퇴계 역시 의사가 맞다. 그는 잔병치레가 많았다. 자기 병을 다스리려고 의학에 입문한 경우다. 책상물림의 특징대로 퇴계는 중년 이후 심장 계통에 문제가 있었고, 소화기가 안 좋아서인지 항상 배가 더부룩했으며, 설사 구토에 시달리기도 했다. 내친 김에 퇴계는 경북 영천의 한 의원에서 의학 수업을 받았다. 이후 자기 몸을 다스린 것은 물론 주변의 환자들에게 오령산·쌍화탕 등 각종 한약재를 처방해줬다. 꽤 유명한 이야기대로 양생법(전통 건강도인술)을 정리한 『활인심방』(요즘 번역본도 많이 나왔다)을 펴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그건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등 실학파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개항 훨씬 이전에 서양의학 정보를 갖고 있었다. 성호의 경우 『성호사설』에서 서양 생리학설을 인용했고, 중국에서 활동하던 서양의사 아담 샬을 소개했다. 국내 첫 시도였다. 서학에 밝았던 다산의 경우 『여유당전서』에서 서양의학 이론을 일부 수용했다. 이런 유의들은 궁중을 무대로 활동한 이도 적지 않지만, 대민 치료를 위해 무료진료에 나섰던 이도 많다.

대표적인 게 좌의정을 지낸 안현(1501~60)이다. 그는 전라감찰사로 있을 때 금손만응고(고약의 일종)를 제조해 백성들의 화농제거에 처방했다. 놀랍게도 그는 별시문과 출신. 그럼에도 의학에 두루 밝았던 것은 유의가 원래 전인적 엘리트였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그게 전통의학의 특징이다.

즉 부분과 전체를 한꺼번에 보는 전일론(holistic)적 시야가 기본이다. 『주역』 처럼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틀에서 보기 때문에 한학· 경학(經學)에 밝을 경우 자연스레 인간의 몸에 대해서도 문리가 터진다. 인간의 몸을 쪼개고 칸막이해서 전공영역을 나누는 서양의학의 한계를 벗어나 종합의학 ·전일의학을 모색하고 있는 21세기에 새롭게 읽을 만한 게 이 신간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중앙일보 2011.02.25


퇴계 이황 의사였다?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 출간 /1## @@ 의학사(한국서적)

이황 송준길 서명응 서유구…. 이들은 조선시대 이름난 문인이자 유학자라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유의(儒醫)였다는 것. 조선의 사대부들은 부모나 자신의 병을 스스로 치료하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의술을 열심히 공부했다.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들녘)은 경희대 한의대 김남일 교수가 역사 속에 파묻혀 알려지지 않았던 유의들의 활동과 업적을 추적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전통의료가 민간의료 수준을 탈피해 이론적 근거를 가지게 된 것은 유의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 컸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당시 의학에 대한 지식인들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유성룡이 집필한 ‘침구요결’과 ‘의학변증지남’은 조선인의 체질과 의학적 환경을 파악한 저서로 평가된다. 박제가는 정약용의 ‘종두법요지’에 따라 최초로 인두법을 실시하는 업적을 남겼다.

유교적 세계관을 밑바탕으로 삼은 의술을 중시하기는 왕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조는 직접 ‘의약론’을 지었고 영조는 경종의 환후에 나름대로의 처방전을 올리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왕세제였던 영조가 경종에게 올린 게장과 생감이 ‘동의보감’에도 기록된 상극의 음식이었던 터라 독살설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저자는 궁중에서의 치료 활동과 대민 치료 활동, 의학교류, 유의들 간의 학술적 논쟁 등으로 유의들의 활동을 구분하고 그들이 연구했던 의학 분야에 대해서도 살폈다.


양진영 기자

국민일보 2011.02.11


정약용·유성룡·세조, 한의학 뒤에는 그들도 있었다 /1## @@ 의학사(한국서적)

다산 정약용은 의서를 두 권 쓸 정도로 의학연구에 몰두했다. 세조는 의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병을 스스로 처방할 만큼 의학에 조예가 깊었다. 재상까지 지냈던 유성룡은 직접 백성들을 치료했다.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의(儒醫)들의 활동과 업적을 파헤친다. 유의란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을 연구했던 사대부들을 일컫는다.

 

책의 저자인 김남일 경희대 한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전통의료가 민간의료 수준을 탈피해 이론적 근거를 갖게 된 것은 유의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백성을 편안하게 돌본다는 유학의 지향점은 의학과 일맥상통한다. 실학자 박제가는 최초로 인두법을 실시했다. 그는 국력은 백성의 건강에 달렸다고 판단해 천연두 치료에 평생을 바쳤다. 그가 완성한 종두법은 의원들에게 전해져 많은 인명을 구했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잘못된 전통 치료법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보고 기존 의술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백성을 위해 적극 나선 유의들 덕분에 조선의 의학은 기술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여성 유의도 있었다. 빙허각 이씨는 1809년 육아와 구급법 등을 담은 여성용 백과사전을 편찬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사주당 이씨는 태교 관련 지식을 집대성한 《태교신기》를 펴냈다. 여성 교육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던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이들의 활동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사대부뿐 아니라 왕들도 의술을 중시했다. 세조는 의학 공부를 권장하고 의약론을 지어 반포했다. 정조는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한 의학적 지식이 깊었다.

책에는 소아과학,전염병,법의학 등을 연구한 유의들의 활동도 소개돼 있다. 저자는 "중인계층에만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연구 틀에서 벗어나 통섭의 시각에서 한의학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만수 기자

한국경제. 2011.02.24


한의학에 미친 조선 지식인들의 김남일 교수 /1## @@ 의학사(한국서적)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 연구가 조선시대의 중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시대정신’의 키를 쥐고 있던 지식계층인 양반들이 한의학을 이끌어왔습니다.”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의 부제는 ‘유의열전’이다. ‘유의(儒醫)’는 일반적으로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연구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저자인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교수“그동안 한국 의학사의 서술이 서양학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전통 의학에 대한 그러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의학에…’는 역사 속에 묻혀있던 유의 153명의 활동과 업적을 담은 책이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양생을 직접 실천했던 퇴계 이황, 후손들이 문집인 ‘여유당전서’를 묶으며 의서를 두 종 포함시킬 정도로 의학연구에 매진했던 다산 정약용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의학자로 활동한 역사적 사실들이 베일을 벗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1, 2주에 한 번씩 김 교수가 ‘한의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살을 덧붙였다. 그는 “유의 한 명당 원고지로 따지면 4∼5장 분량밖에 안 되지만, 그것을 쓰기 위해 일주일 내내 고민했다. 의학과 관련된 기록이 있는지 정치가이자 철학자로서 그들이 썼던 문집 등 저술도 꼼꼼히 살폈다”고 말했다. 책에는 빙허각 이씨, 사주당 이씨 등 여성 유의들의 활약상도 담았다. 빙허각 이씨는 1809년 태교, 육아 등 의학적 내용이 다수 담겨 있는 ‘규합총서’라는 여성용 백과사전을 편찬해 냈고, 사주당 이씨는 1821년 태교 관련 원고를 모아 ‘태교신기’를 저술한 바 있다. 김 교수는 “그들 이전에는 의서들이 주로 의약이론이나 처방 등을 제시하고 있다. 여성 유의들은 환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데, 이는 현대 의료인들도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에 담긴 유의들 중 유성룡을 가장 인상 깊은 인물로 꼽았다. “당시 시대 분위기로는 사람의 몸을 만지며 치료한다는 것 자체가 양반으로서의 위신을 지키지 못하는 일로 비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유성룡은 재상 출신임에도 ‘침구요결’과 ‘의학변증지남’이라는 2권의 저서를 남겼어요. 직접 백성들을 치료하며 지식인으로서 책무를 고민한 흔적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습니다.” 김 교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의학을 이끌어왔던 근현대 인물들에 대한 책도 준비 중이다. 그는 “한의학 속에 숨어 있는 학술 사상, 관련 인물, 설화, 치료법 등은 한국 정신문화의 바탕이 되는 무형의 문화 콘텐츠다. 전통의학으로서 한의학이 그 위상을 되찾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유의들의 치료술과 생명사상이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희창 기자

동아일보 2011.02.26

출판계에 한국사 '바람' /1* @@ 한국사(서적)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정부와 한나라당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기로 한 가운데 한국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망한 책들이 최근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웅진씽크빅의 인문·교양 브랜드인 웅진지식하우스는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를 오는 14일 정식 출간한다. '시민 역사 교과서'를 표방하는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국인이라면 알아야 할 한국사의 주요 내용을 일국사(一國史)를 넘어 동아시아와 세계사의 관점에서 담아냈다. 역사문제연구소가 기획한 이 책은 법제사부터 생활사까지 각 분야의 권위자 17명이 3년간 집필했다.
전문가들의 친절하고 자세한 해설은 물론 희귀 사진과 2천 컷의 도판, 입체 지도 등 다양한 시각자료를 수록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웅진씽크빅의 이수미 단행본 개발본부장은 "세계사 속에서 한국사를 조망한 최근의 연구 성과를 풍부하게 반영했다"면서 "역사를 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시각에서 기술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를 통합적으로 서술한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창비 펴냄)도 최근 출간됐다. 유용태 서울대 교수, 박진우 숙명여대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2005년부터 5년 넘는 기간에 걸친 토론과 집필을 통해 책을 완성했다. 17세기 초부터 2010년까지 한·중·일을 중심으로 베트남, 필리핀, 몽골 등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기술한 이 책은 각국 역사를 단순히 병렬적으로 나열한 기존 역사서와는 달리 사건 하나하나가 국가 간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했는지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다. 1, 2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해금시기의 국가와 사회, 세계시장의 확대와 지역질서의 변화, 국민국가를 향한 개혁 등 10개의 주제를 1, 2권에 나눠 담았다. 저자들은 역사화해에 도달하려면 자국은 피해자, 타국은 가해자라는 이분법과 타국의 국가폭력은 비판하면서 자국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이중잣대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삼국통일의 정치학'(까치 펴냄)은 한국사 최대 사건으로 꼽히는 삼국통일을 국제정치학 관점에서 고찰한 책이다. 국제정치학자인 저자 구대열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는 삼국통일을 한민족의 형성과 성장의 시발점으로 규정하고 삼국 내부의 역사적 관점이 아니라 삼국 간의 관계, 중국·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통해 통일 과정과 의미를 진단한다. 구 교수는 "삼국이 생존을 위해서 발버둥치고 치열하게 대립, 각축, 경쟁하던 시대에 삼국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중국과 신라의 변방을 노략질하는 일본과 대립하던 국제정치적 구조 속에서, 또 국내적으로 생성된 동력에 의해서 전개되는 삼국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구조 속에서, 한국인의 대외적 인식과 행위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보이는 세계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돕는 청소년 역사 교양서다. 현직 역사교사이자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주요 필자로 활동하고 있는 최재호, 이성호, 윤세병 씨가 3년에 걸친 연구와 조사를 통해 세계 곳곳의 역사를 두루 담았다. 특히 미국와 유럽 등 강대국 중심의 세계사 서술에서 벗어나 약소국들이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고군분투한 역사를 비중 있게 다룬 것이 특징이다. 책을 펴낸 창비는 "우리나라와 세계의 20세기 근현대사를 두루 아우르며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은 물론 성인 독자들까지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연합뉴스 201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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